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바스 왕조 (문단 편집) == 후계자 논쟁 == 아바스 왕조가 [[정통 칼리파 시대]] -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이렇게 보편 [[칼리파]]의 왕통을 잇는 왕조였던 탓에 아바스 왕조가 망하고 난 이후에도 그 후계를 칭하는 왕조들이 여럿 나타났다. 마치 [[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망하고 난 이후 [[제3의 로마]] 갈등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다투었던 것과 비슷하다. 일단 가장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국가는 [[오스만 제국]]이다. 애초에 [[셀림 1세]]가 최후의 아바스 칼리파 [[알 무타와킬 3세]]에게 칼리파직을 선양받은 만큼, 정통성 면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압도적이다. 게다가 오스만이 무려 400년 가까이 중동과 서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이렇게 이슬람의 3대 성소를 관리했던 것만으로도 정통 칼리파의 후계를 자칭할만한 자격은 충분했다. 이 시기의 오스만 황제들은 '세 성소의 보호자'라고 불렸으며 거의 대부분의 [[수니파]]들을 다스렸다. 심지어 저멀리 떨어져있지만 국력만큼은 [[오스만 제국]]에 맞먹었던 [[악바르 대제]] 시절의 [[무굴 제국]]도 오스만 칼리파의 눈치를 보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오스만 제국의 국력과 정통성이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는 자신들이 아바스 왕조의 정통 후계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많이 일어났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자손을 자칭하며, 아바스 왕조의 건국자 [[아부 알 아바스]]가 무함마드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아부 알 아바스는 [[메카]]의 지배 부족인 쿠라이시 부족의 하위 부족인 바누 하심의 일원이었다.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숙부인 아바스 이븐 압둘 무탈리브의 고손자였다. ] 같은 무함마드의 후손으로서 아바스 왕조를 계승할 명분이 있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수단]] 지방의 [[와다이 술탄국]], [[파키스탄]]의 카이르푸르 술탄국과 바하왈푸르 술탄국, [[페르시아]]의 바스타크 칸국 등이다.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까닭은 아바스 왕조의 후손들이 실제로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탓이 컸다. [[몽골 제국]]이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한 직후, 아바스 왕족들은 죄다 도망쳐 온갖 곳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피신한 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거나 세력을 길렀는데, 이들이 자손을 낳고낳아서 결국 수많은 방계혈통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스타크 칸국 역시 이런 맥락에서 건국된 왕국이었다.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아바스 왕족 생존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던 이스마일 2세가 가솔을 이끌고 이란 지방으로 도망쳤고 결국 바스타크 지방에 이르렀다. 이스마일 2세의 후손들은 결국 17세기에 독자적인 칸국을 세우기에 이르렀고, 이때는 마침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이 쇠퇴하던 시기였기에 감히 [[칼리파]]의 후계를 자칭할 수 있었다.[* 바스타크 칸국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모하메드 아잠 칸 바니에바시안은 1967년 사망했다. 이로 인해 바스타크 칸국은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이와 함께 왕위를 지켜오던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방계 혈통도 대가 끊겼다.] [[와다이 술탄국]] 역시 스토리는 비슷비슷하다. 몽골이 쳐들어오자 살리흐 이븐 압둘라 이븐 아바스 왕자는 저멀리 [[헤자즈]] 지방으로 달아났다. 그에게는 '살리흐'라는 이름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마침 [[헤자즈]] 지방을 순례하던 한 학자가 그 아들을 보고 왕의 자질이 있다싶어 아들을 데리고 수단 지방으로 돌아갔다. 살리흐 왕자는 수단 지방의 비무슬림들을 싹 다 개종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데 이 것이 바로 와다이 술탄국의 기원설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